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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달팽이]/* 월간민달팽이 회원 조합원 기고글

[4월호 이 달의 회원] '단무'님 인터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4. 7.




자기소개를 스스로 해주시신다면?


저는 민달팽이 조합원이구요 토닥토닥협동조합에서 비상근 이사를 맏고 있구요. 민달팽이 유니온은 처음 생길때부터 거의 같이 활동하고 2기때는 짧게나마 운영위원을 맡아서 많이 인터뷰도 했었던 박재흥입니다. 활동명은 단무라고 합니다.

활동명은 왜 단무가 되었나요?

제가 당사자 운동을 하는 친구들이랑 활동을 하게된 계기가 학교 총학생회에서 했던 국토대장정이었는데, 국토대장정에선 국토 바깥에서의 서열과 질서같은 것들을 배제하고, 국토내에서 질서를 만들어보자는 정신으로 서로를 형이나 오빠, 언니 같은 명칭 말고 별명으로 부르자고 했어요. 그때 조원들이 지어준 별명이 단무였어요.

자유연상으로 맨처음에 누가 저를 보고 생각나는 말을 막 말해요. 그러면 수건돌리기처럼 둥그렇게 앉아서  그 전에 나왔던 단어랑 연상되는 단어를 말하는 거에요. 그전에 김밥이나 만두같은 거 였겠죠. 그래서 제가 단무지가 되었는데, 다 두글자로 만들기로 했어요. 글자를 끊기로 했는데 무지는 좀 그랬고, 단무가 느낌있고 좋았어요.

이 달의 회원은 누가 좋을까, 고심하다가 민유의 역사를 잘 알고 있는 분이 좋을 것 같다고 추천을 받았는데 재흥님을 추천 받았어요. 그 당시에 같이 활동했던 많은 사람들 중에서 단무님이 추천된 이유가 있다면?

계란이가 저를 좀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잘 모르겠는데 본인이 계속 말하고 다니더라고요.

사심으로 추천된거네요?

본인의 호불호 인거 같아요.(웃음)



초기에 운영위원 등으로 민유 활동에 참여하셨다고 하는데, 그때의 활동을 좀 소개 해주실 수 있으세요?

그 전에는 연대에서 기숙사 관련한 학생주거권 청년주거권이라는 의제를 처음으로 가지고 나왔고, 학생들이 높은 집값으로 고통받아서 학습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 다음에 발전된 형태로 시작했어요. 처음엔 학내단체로 시작해서 학교에 기숙사를 많이 지어달라. 서울시내 평균 기숙사 운영률이 10%못 미친다.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 비율이 놓은데 다른 생활비와 함께 주거비때문에 고통받고 그때문에 학습권이 침해된다. 라는 주장을 학교에 많이 했어요. 그와 더불어서 학교 학생들이 많이 모여사는 지역은 정해져있잖아요. 연세대같은경우는 서문과 동문에 많이 사는데, 너무 사람들끼리 단절되어 살지말고 같이 어우러져 살자. 예를들면 밤에 야식이라도 먹고 싶을때  2인 1닭하면 좋잖아요. 또 이사를 할때 서로 품앗이처럼 도와주면 좋겠다는 취지로 시작했는데, 그런 취지가 참 공감됐어요. 그때 제가 특히 복학을 했었던 때였는데, 복학하면 막막하잖아요. 그때 서로를 돕는다는 아이디어가 참 좋았어요.

처음의 활동은 활발히 이루어졌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아요. 대신 이런 단체가 있다는 상징성이 컸어요. 언론도 많이 탔고, 실제로 회원수가 200명이 넘었어요. 그에 비해서 우리 스스로 활동을 만족하는가 라는 질문에 있어서는 저희들끼리도 많이 의문을 가졌어요. 그런 상태에서 2기가 출범했어요. 저는 1기 마지막 즈음 회원들끼리 하는 스터디에 자주 나갔다가 2기 운영위원 제안을 받고, 민유 총회에서 인준을 받아 2기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게 됬어요. 그때 소통국장을 맡았어요.

소통국장? 직책이 굉장히 특이하네요

일방적으로 알린다기보단, 내부적으로는 사람들끼리 잘 네트워크가 되게 하고 외부적으로는 홍보 역할도 하게 되는 거죠. 제가 전공이 언론홍보 영상학부여서 배우는 것들을 접목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런 국이 필요하다고 제안했고, 제가 국장이 됬어요

2012년이 되게 큰 해였잖아요. 대선과 총선이 겹치는 중요한 해였고. 그 과정에서 민유가 어떤 활동을 해야하는 가에 대해서 그때 민유운영위원인 친구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어요. 외부적으로 이슈파이팅을 해야하는지, 내실을 다지는 부분이 필요한지. 결론적으로 이슈파이팅은 어느정도 성공했었고, 내실을 다지는 부분에 있어서 여전히 미흡했어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제가 2012년도에 휴학을하고 고향에 내려가게 되었어요. 고향에 내려가니까 활동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기 힘들었죠. 그러면 안됬었지만 그래도 서울에 있는 친구들이 이야기할때 의견제시 하며 도움을 주다가 민유는 이렇게 활동하다가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3기가 출범했죠.

지금의 민유의 내실은? (냉철히 평가해주세요!)

지금 민유는 사실 조합원들 개개인이 민유 활동 함으로서 어떤 이익을 었었다 라는 느낌을 받는건 그전과 비슷할 것 같아요. 차이점이 있다면 그전에는 유령회원이 꽤 많았어요. 지금 남아있는 사람들은 한번걸러지고 민유와 함께 가겠다고 결속력을 가진 사람들이여서, 개개인의 만족도는 지금이 더 높지 않을까요. 이제는 학내단체에서 벗어난지도 오래 되었고 집을 짓는다는지 민유의 가시적인 성과들이 기대가 되죠.

그 안에서 공동공간을 같이 쓴다고 했을때 저는 참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거든요. 제 꿈이 제주도에서 집을 짓는 건데, 민유가 잘되서 서울말고 전국 곳곳에 집을 지으면 제주도라고 못지으라는 법은 없잖아요? 그런 희망? 민유가 그때까지 망하지 않고 잘 되길 바라는 바램?

민유에게 또다른 바램이나 제안이 있으시다면?

민유가 주택협동조합을 만들었을때 창단 멤버가 되고 싶었거든요. 근데 밀실 회담이 되어버린거에요. 계란이에게 말했었는데 실무상 필요한 방식임을 충분히 이해하구요. 밀실이라고 한건 농담이에요. 사무실이 너무 밀실이에요. 답답하실 것 같아요. 지하에서...(웃음)  꼭 끼고 싶었는데 거기 못 낀게 좀 아쉽더라구요. 그런거는 할사람 툭 던지고 내일까지 마감합니다 라고 말해도 언제든지 확인하고 들어갈 수 있거든요. 개인정보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어요. 민유가 클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웃음)

첫 인터뷰자가 된 소감은?

아까 말한 아쉬움이 좀 덜어진 것 같아요. (웃음)

그리고 이런 것들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토토협에서도 잠깐 운영위원하다가 이사를하고 있는데, 이사라고 하기엔 좀 부끄럽지만 항상 조합원을 모으는 것이 가장 힘들잖아요. 다들 각각 바쁘고, 맨날 모이는 사람들만 모이고, 거기 꼭 가야돼 우린 이렇게 참여해야돼 라고 설득하는 것이 힘든 문제인것 같다는 생각도 하고 항상 사람도 부족하고 돈도 없어서 열성적인 활동회원의 열정에만 기대야 하는 구조가 안타까운 것 같아요.

무슨 얘기하다 말았죠? (소감...) 어쨌든 구성원들이, 사무실에서 실무하시는 분들이 활동 열심히 하시는 것 아는데, 항상 저는 민유에서 운영위원이었다가 조합원으로 돌아간 입장으로 그동안 내가 얼마나 안이하고 무심하게 활동했었는가 깨닫는거죠. 그때 사람들에게 문자 한번 돌려봤으면, 이런식으로 연락해보았으면 내가 머릿수만 채우는 사람이 아니라는 느꼈을텐데 소식지를 발송해야 하는 것도 좋고, 조합원들이 더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많이 내서 같이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요.

약간 화제를 돌려서 어떤 형태로 살고계시나요?

저는 하숙에 살고 있어요. 군대를 가기 전에는 밥안주는 하숙을 살다가, 군대 갔다와서는 그런형태에서 밥을 잘 안먹게 된다는 걸 깨닫고 밥주는 하숙을 찾아서 지금은 3번째에요. 처음에 군대를 갔다와서 얻은 하숙에서 1년 살다가, 2011년 방을빼고 대구내려갔다가 다시 잡은 하숙, 그리고 제가 휴학을 하고 여행을 갔다왔어요. 그 다음에 얻은 하숙이 지금의 하숙이에요. 저는 하숙이 괜찮은 것 같아요

하숙의 형태를 조금 더 설명해주신다면?

응사의 그런 하숙집은 아니구요. 요즘은 그런 하숙 거의 없고. 밥을 제공해주고, 생활 공간은 독립적으로 보장해주는. 고시원이나 원룸처럼 복도식에 방이 있는 구조인데 식당은 다른 층에 있어서 밥은 거기서 먹는 그런 구조. 요새는 다 그런 것 같아요. 제가 경험한 하숙도 그런 구조였어요.

하숙에서 생활하시는 건 어떠세요?

밥을 먹을 수 있다는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사실 학생들이 돈이 없으면 가장 먼저 아끼는게 밥값이에요. 앵겔지수가 높다고 그러는데, 학생들은 앵겔지수가 낮을 것 같아요. 왜냐면 밥 한끼 안먹거나, 삼각김밥으로 떼우거나 김밥 한줄로 떼운다던지. 그렇게 아낀 밥값으로 술마시거나 그러니까. 그래서 밥값이 일단 포함된거니까 밥이 너무 많이 맛없지만 않다면 꼭 챙겨 먹으려고 노력 하거든요. 나중가면 질릴 수도 있겠지만. 일단 밥을 해결할 수 있다는게 하숙이 좋은 형태인 것 같아요.

밥을 같이 먹는게 중요하잖아요.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에게는, 단순히 한끼 떼우는 것이 아니라. 어색하더라도 식탁에 둘러 앉아 같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게, 집밥을 먹는다는 느낌. 집밥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단어의 함의도 있고.그런점에서 괜찮은 것 같아요.

주택협동조합 창립대회도 오셨는데, 민유가 준비하는 사회적 주택의 모습은 어떠셨어요?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아요. 집을 짓는다는 데에만 집착을 안하고 더 유연한 방법을 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왜냐면 집을 짓는데는 돈이 많이 들잖아요. 돈을 모으는게 민유가 지금까지는 생각을 못했던 큰 규모인데, 그런 생각을하고 추진하는 것에 있어서 굉장히 높이 평가하구요. 공공공간은 꼭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밥을 같이 먹을 수 있는?) 네 그것도 그렇고, 그 집에 살지 않아도 조합원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 여기도 내집이겠거니 편하게 몸 녹일 수 있는 공간 (사랑방이나 게스트 하우스 같은?) 그런게 꼭 설계에 반영되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저는 그게 민유의 정신이되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각자가 개인 방을 가지는 거면 그냥 주택 사업인거고, 그게 큰 의미를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조합원들이 직접 설계하는데 의견을 낼 수 있기도 해야하고. 벽돌을 직접 쌓는 것도 인건비를 아끼는 방법도 되겠지만 조합원들이 이게 정말 내집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 경험이 될 것 같아요.

재흥님에게 주거권이란?

주거권은 사실 어디사느냐 라는게 그 사람의 많은 부분들을 결정하는 거거든요. 어떤 형태로 사는거냐로도 많이 결정되는거고, 자신의 방의 모습이 그 사람의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내면을 잘 나타내 준다고 생각하구요. 그 공간을 자기가 너무 힘들지 않게 얻을 수 있고, 자기가 자유롭게 옮길 수 있고 그거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가 되야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요.

방이 내면이랑 닮아있다는게 무슨 말이냐면, 제가 만약 실연을 당했어요 평소에는 흰벽을 두다가 낙서도 하고 이것저것 잡지에서 맘에 드는것을 붙이기도 하고. 내가 없어 보이는 부분들을 이렇게 가리고 싶어 하는 구나. 억지로 가리고 싶어하는 나의 마음이라고 생각이 든거죠. 어지러운 벽을 보면서 어지러운 마음 같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한평짜리 방에 조립식 옷걸이를 두고 짐을 구석으로 몰아 넣고 짐이랑 같이 사는거잖아요. 사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사람이 창고랑 같이 사는 거잖아요. 짐을 둘 곳이 따로 없고, 그랬을 경우 삶이 너무 너져분해지는 것 같아요. 내가 방이 따로 있고, 드레스룸이 따로 있고, 화장실이 따로 있고 그랬을 경우와 모든것이 다 같이 들어있는 방의 경우랑 사람이 사는 모습이 굉장히 달라지는 거죠, 최소한 짐놓을 공간과 사람사는 공간은 구분되어야 한다는게 제 생각인거죠. 


마지막으로 셀프 인터뷰의 기회를 드릴께요 (제가 준비가 안된 인터뷰어라는게 여기서 드러나지만...)

질문이랄 건 없고, 그냥 빨리 위원장님이 군대를 무사히 다녀오셨으면 좋겠어요. 아, 제가 위원장님이랑 3기 위원장이었던 한솔이라는 친구와 창립대회 영상을 찍은 다솔이라는 친구와 주거관련 다큐를 찍은 적이 있었어요. 그때 제가 대구에서 있었을땐데, 대구부터 포항, 부산 집 집마다 다니면서 과메기도 얻어먹고 회도 먹고 융숭한 대접을 받았어요. 그때 맨몸으로 부딛혔었거든요. 빈집이 몇개인지 모르니까 부동산가서 집사는 사람인 척도 해보고, 맨 꼭대기층 올라가서 계단으로 내려오면서 세어보기도 하고, 주차장 가서 대략 가늠해보기도 하고 그랬어요. 지금은 물론 그때처럼 무대포 시도를 하기에는 점점 힘들어 지겠지만 그런걸 같이 했던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그 길을 가고 있다는게 너무 고맙기도 하고 그래요.

지웅이 형이 정말 군대를 잘 갔다왔으면 좋겠어요. 또 계란이가 군대에서도 민유에 보탬이 되겠다고 공인중개사 공부했잖아요. 사실 저희때도 민유에 도움이 되는 뭐 해보겠다고 주택관리사 공부하는 친구들 있었는데, 다들 다 민법 이런거. 법이 너무 어렵다고 다 포기했었거든요. 근데 제가 알기론 계란이 3달만에 당당하게 붙었어요. 그게 너무 고마워요. 제가 이것 저것 이야기 많이 했지만, 민유 구성원인 사람들이 다 좋아서 아직도 민유가면 집같고 그런느낌이 좋아서 남아있고 그런 것 같아요.

이렇게 허접한 첫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웃음)
인터뷰 정리 : 다영

  ▲ 인터뷰를 진행했던 연희동의 카페 @작은 정원


단무님은 '민유의 영원에 동반자이고 싶은' 조합원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