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트루먼쇼]처럼 이 세상은 오직 내 주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의문 누구나 한 번쯤은 가져봤을 것이다. 내가 보는 것만이 이 세계의 전부일지도 모른다는 착각. 이런 착각이 때로는 사람을 오만하게 만든다. 남이 뿜어내는 오만함에 질릴 대로 질렸고, 내가 뿜어내는 그 오만함이 틀렸다는 확신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라오스의 여행길에 올랐다. 내가 가본 곳까지가 나의 세계를 넓혀 주리라는 기대를 품은 채.
도착하자마자 우릴 반긴 건 후끈한 라오스의 공기였다. 온 몸을 데우는 뜨겁고, 축축한 공기는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비엔티엔 공항부터 비엔티엔의 미리 잡아놓은 숙소까지 벤을 타고 가는 길에 보이는 바깥풍경은 음산했다. 라오스는 11시면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불빛 하나 없이 어둡고, 사람도 별로 없는 거리를 보며 ‘괜히 왔구나.’라고 생각했다. 사실 같이 간 민달팽이 멤버들과도 썩 친한 사이도 아니고, 영어 한 자 못하는데, 내가 왜 연차를 3일이나 써가며 이곳에 왔을까 싶었다. 이 곳, 라오스가 나를 과연 어떻게 즐겁게 할까.
그 오만한 생각은 딱 첫날에 멈추었다. 둘째 날 도착한 루앙프라방은 그 풍경만으로도 사람을 편하게 하는 여유로움을 선사했다. 또한 조금 무리해서 비싼 곳으로 잡은 루앙프라방의 숙소는 이루 말할 것 없이 완벽했다. 나는 사실 3박5일 동안 관광보다도 그저 숙소가 좋았다. 내가 돈을 넉넉히 준 것도 아닌데, 부재 시마다 들어와 청소해주고, 수건을 갈아주는, 아침에는 눈물 나게 맛있는 조식을 주던, 숙소. 그것 말고도 좋았던 것이 있다. 나는 여름을 좋아하는데, 라오스의 5월 날씨는 제대로 취향저격이었다. 무척 더울 것이라고 예상했던 라오스는 생각만큼 덥지 않았다. 한국의 여름은 밀집된 인구와 빽빽한 건물의 열기가 더위를 가둬두는 느낌이라면 라오스는 탁 트인 마을에서 더위가 놀다가는 느낌이었다.
둘째 날에는 산책을 하며, 자전거를 탔다. 마을 곳곳에서 꺄르르 웃으며 장난치는 어린이들이 있었다. 해가 어스름해질 즈음엔 다 같이 푸시산에 올라 루앙프라방을 한눈에 내려다보았다. 가까이서 보고, 멀리서도 본 낯선 도시의 풍경들은 나를 뒤흔들었다. 삶은 어디에나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와 닿았다. 내가 겪지 않은 삶도 나와 같은 삶이라는 것을 내가 속하지 않은 공간을 들여다보니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셋째 날 간 꽝시폭포는 풍경에 감흥이 없는 나 역시도 감탄을 금치 못할 만큼 아름다웠다. 그 옥빛 호수에서 우리는 수영을 했다. 수영을 못하는 나는 바위에 걸터앉아서 몰려드는 닥터피쉬에게 각질을 내어주며, 다이빙하는 멤버들에게 응원을 보냈다. 그때의 꿈같은 기억은 지금도 미소를 머금게 한다.
마지막 밤이 저무는 때에 우리는 모여 술을 마셨다. 다들 라오스에서 술을 많이 마실 줄 알았는데 한국에서보다 덜 마시게 되는 것 같다며 웃었다. 우린 어쩌면 지친 하루 끝에서 술 마시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렇게 술을 마셨던 걸까 싶었다. 쑥스럽지만 나는 사실 그날 모여 앉은 밤이 참 좋았다. 멤버들과 함께 탔던 툭툭도, 둘러앉아 먹은 모든 음식도, 어느 것 하나 좋지 않은 적이 없었다. 라오스 여행멤버들에게 고맙다. 이 글을 빌어 고맙다고 하고 싶다. 여행은 내 세계를 벗어나는 일종의 도피라고 여기던 나는 어쩌면 매우 고리타분한 강박에 시달리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멤버들은 그런 나를 허물고 선뜻 여행에 초대해주었다. 라오스가 주는 편안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멤버들의 배려 덕분이었는지 몰라도 나는 날선 경계와 경직된 어깨를 풀고 있을 수 있었다.
여행이 끝나던 날, 우리는 언제 꿈을 꿨냐는 듯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나 역시 라오스는 뒤로 한 채 일상으로 빠르게 돌아갔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내가 겪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어딘가에는 본인의 삶을 살아가는 또 다른 우리가 있다. 내가 속단하고 성급히 판단하는 것들은 사실 아주 소중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을 들여다보는 데에는 아주 잠깐의 시간과 배려만 있으면 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글 / 안예은 회원 (sodoi7772@go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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