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호 / 여는글] 세입자가 단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는 나라
아파트와 나의 첫 만남은 당시 식당을 운영한 아버지를 따라 배달 갔을 때 이뤄졌다. 유년 시절, 우리집은 조그만 식당 한 켠을 개조해 살았는데 당시 동네에는 최신 아파트들이 건설돼 사람들이 입주하기 시작했다.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나는 초등학교 장래희망에 ‘아파트 사장’이라고 적었다. 꺠끗하고, 적당히 넓고, 좋은 집, 이왕이면 아파트에 살면 좋겠다는 바람을 키웠다. 그러나 그 꿈이란 것이, 정말로 꿈에 남게 될 줄은 몰랐다. 대학에 들어오고, 서울로 올라온 친구들의 원룸을 봤을 때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네 평 남짓한 방이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0만원이라니. 평당 임대료로 환산하면 타워팰리스보다 비쌌다. 보증금 1000만원을 부모님이 지원해주는 친구는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보증금이 없이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에 들어가서 사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 왜 가지고 있는 돈의 크기에 따라 집에서 세상을 보는 높이가 달라져야 하는지 의아했다.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5년 사이 고시원과 같이 주택이 아닌 곳에 거주하는 청년의 비율은 무려 2배 넘게 증가했다.
이제 더 이상 나의 꿈은 ‘내 집 마련’이 아니다. 나는 아파트에 살지 않아도, 집을 소유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세입자의 다른 말은 잠재적 자가 소유자였다. 일생의 목표를 집을 사는 것으로 만들었고 이를 통한 자산기반복지 모델은 주거에서 사회의 영역은 지운 채 오로지 시장만 남게 했다. 이는 곧 세입자는 잠시 겪는 상태, 반드시 탈출해야 하는 상태를 겪는 사람들을 의미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세입자를 위한 주거정책은 집은 사게끔 만드는 대출 정책이 주를 이루었다. 가계부채가 1400조를 넘어갔지만 여전히 정부는 ‘빚 내서 집 사라’는 기조를 포기하지 않았고 그 결과 박근혜 정부에서는 20대와 30대의 주택전세자금과 구입자금의 대출 비율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정부의 이러한 시도는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2000년대부터 자가소유 비율은 본격적으로 줄기 시작했고 이는 고스란히 월세 세입자를 늘렸다. 이미 저 높은 상공에 떠있는 주택 가격을 두고 누군가는 떨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빌며 부동산 뉴스를 꼼꼼히 챙겨보고, 누군가는 2년마다 전전긍긍 이사하며 조금이나마 집값이 떨어지기를 고대한다. 이 교착 상태에서 온몸으로 주거불안을 겪고 있는 세대가 바로 청년세대다. 전국 청년 주거빈곤율은 29%에 달하며 서울은 40%, 제주는 37%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이번 대선에서 청년 주거 정책을 별도로 발표했다. 청년 쉐어하우스 5만호를 비롯해 대학생 기숙사, 신혼부부 임대주택, 신혼부부 주거수당 등 공급 정책이 주요 골자다. 우리는 곧잘 문제를 겪는 대상을 문제의 원인으로 규명하는 오류를 범한다. 주로 세입자와 청년 정책이 그러한데 이들을 문제로 규정하고 이들이 겪는 다양한 상태를 정부가 정한 목표에 도달하게끔 하는 방법을 고수한다. 그렇기에 세입자는 자가소유자가 되어야 하고, 청년은 취업을 하거나 아이를 낳거나 해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여전히 청년을 잠재적 주택 구매자, 예비 소유자를 전제로 한다는 데에 있다.
이미 지난 40년 우리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와 동일하다. 그때는 맞았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틀린 선택지라는 것은 자명하다. 지금처럼 높은 주택 가격 유지를 위한 다양한 금융 상품 개발과 잠재적 주택 구매자로 청년을 바라보는 정책은 고스란히 부채를 이 다음세대에게 물려주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 시한폭탄과도 같은 가계부채가 터지는 순간 그 위기는 늘 그래왔듯 사회에서 가장 약한 사람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집으로 돈을 버는 시대를 끝내겠다던 노무현 정부의 못 다 이룬 꿈과 함께 문재인 정부는 이제 집이 자산투자의 수단이 아닌 돈으로 집을 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선언해야 한다. 세입자가 단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던 나라, ‘단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천명한 문재인 대통령의 청사진에 세입자가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글 / 임경지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kyoungjil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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