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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달팽이집 살이

[달팽이집3호] '이주'와 '정주' 사이 (장혜윤 조합원님 기고)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6. 6. 15.

1. [달그락에서 살았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달그락(달팽이집 3호-이하 달그락)에서 지낸 혜윤이에요. 저는 2016년 1월부터 6월까지 달팽이집 살이를 하고 출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동안은 앞으로의 독립과 주거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좀 더 가져보려고 해요!

 작년, 독립을 모색하면서 달팽이집 3호 입주자가 되었다는 합격 연락을 받고서 무척 기뻤던 순간을 기억해요. 달그락에서 지내는 동안, 주변에 많은 사람이 “공동주택 생활은 어때? 재밌어?”라며 묻곤 했어요. 



그럴 때마다 저는 ‘집사람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에 대해서 말하곤 했어요. 같이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고, 같이 놀면서 느끼는 재미도 있고, 안부와 고민을 함께 나누는 일상이 참 좋다고요. 생활을 배우는 느낌이라고! 

 


2. [내 인생의 집사람들]


 저는 자취나 기숙사 생활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 제게 달그락은 ‘생활 학교의 기숙사’, ‘회의하는 제 2의 일터’, ‘늘 친구들이 있는 집’ 같았어요. 낯선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따뜻한 온기를 느끼는 경험은 매우 신기했어요. (가장 많은 일상을 공유하며 살다보니)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었던 사람들이 가족이자 친구가 되는 것은 인상 깊은 경험이었어요.



최근에 가장 많이 웃었던 시간을 돌아보니 집사람들과 보낸 시간이 양적으로 우세!(하핫) 집사람들과 함께 웃고 떠들고 때때로 서로의 고민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눌 때 마다 ‘이 관계성으로 치유 받는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함께 기쁘고 화내고 슬퍼할 수 있는 ‘해방감’이라 해야 할까요.



 이런 집사람들은 달팽이집이어서 만날 수 있었죠. 제게 달팽이집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살아볼 수 있는 플랫폼처럼 느껴졌어요. 이 경험은 제 삶에 은근한 영향을 줄 것 같아요. 

 


3. [힘을 들여야 하는 일]


 한편으로는 함께 산다는 것, 공동체를 만드는 일원이 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어요. 함께 생활하기 위한 규칙 만들기, 집 관리와 운영에 필요한 회의에 참여하기, 협동조합과 조합원의 정체성을 위해서는 마음도 시간도 체력도 필요한데... 또르르..



 집사람들과 정말 많은 회의를 했어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회의를 하면 그 다양함 덕분에 더 풍성하고 좋은 결정을 내리는 경험을 했어요. 그러나 때로는 서로 다른 생각과 언어(표현)의 차이가 크게 느껴질 때도 있었어요.



같은 주제로 잦은 회의를 할 때는 큰 피로감을 느끼며 ‘그냥 빨리 이 회의를 마치고 싶다’는 마음 속 강렬한 충동과 싸워야 했죠. 때때로 졌습니다만... 그래도 집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속으로 ‘민주주의 만만세!’ 외치며 회의에 참여하려 노력했답니다.

 


4. [참을 수 없는 문제의 애매함]


달그락에서 지내면서 제게 가장 큰 고민이자 이슈가 있었어요. 달그락 3층에는 집주인의 짐을 보관하는 방 하나가 있었는데 짐을 챙기는 등의 이유로 사무국이나 입주자들에게 말도 없이 빈번하게 드나드는 일이 생긴 것이죠. 계약상으로나 표면상으로는 집주인과 같이 사는 것은 아니었어요. 그분도 나름대로의 이유나 상황이 있었겠지만...



사전에 방문을 알리고 양해를 구하는 과정 없이 아무 때나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제게는 지극히 사적인 사생활이 동의 없이 공개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사람마다 체감하는 부분이 다르겠죠? 그렇게 집주인이 수시로 드나드는(심지어 자고 가는)일을 겪으면서 저는 ‘내가 사는 집’이 아닌 ‘잠시 머물며 사는 남의 집’이라는 애매함을 강하게 느꼈던 것 같아요.

 이 이슈에 대해서는 집사람들과 조합 사무국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사무국이 중간에서 소통하며 애쓰고 있는 만큼,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어요!



5. [정주라는 삶의 기술, 되찾을 수 있을까]


 우연히 ‘집’을 주제로 다룬 [작은 것이 아름답다] 잡지를 정말 흥미롭게 읽었어요. 거기에서 ‘내 손과 발, 땀과 지혜가 스민 집은 나의 일부이다. 내 몸의 일부에 내 몸이 들어오니 더 큰 하나가 된다.’라는 문장이 있어 여러 번 읽어보았어요.



높은 주거 비용, 열악한 주거 환경, 가난한 호주머니 등으로 부동산 값에 따라 이주해야하는 사회에서 ‘정주’보다는 ‘이주’가 익숙한 세입자로서 ‘정주’가 너무 먼 얘기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떻게 정주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정주 할 수 있을까, 물론 달팽이집도 떠올렸지요.


대부분의 언어에서 산다는 말을 정주한다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어디에서 사는가?’하고 묻는 것은 여러분의 일상적 존재가 세상에 모양을 부여하는 장소가 어디인지를 묻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정주하는지 알려주면 여러분이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습니다. 

- ‘정주, 되찾아야 할 삶의 기술’ 부분 중에서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 이반 일리치]


 제가 좋아하는 작가 이반 일리치는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라는 책에서 ‘정주’를 ‘사랑하는 기술, 꿈꾸는 기술, 고통을 겪고 죽음을 맞는 기술 등 살아가는 총체적 기술이 저마다 독특하기 때문에 저마다 생활방식이 독특하다.’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그리고 ‘토착 정주자’는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을 꾸리고 만들어 가는데 ‘입주 공간의 소비자’는 만들어진 세계에서 살며 집 벽에 구멍을 낼 수 없듯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음...) 



 ‘입주 공간의 소비자’가 아닌 ‘생활 공간의 주인(주체)’으로 살아보고 싶다(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할지를 모르겠다 싶은 요즘. 그래서 다시, 어떻게 살아야할까라는 생각이 드는 시기에요.

 이 글을 빌어서, 일상을 함께 해주었던 집사람들과 열심히 일하는 사무국 사람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