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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달팽이유니온]/* 보도자료, 기자회견, 논평

타워팰리스보다 비싼 곳에 살지만, 행복하지 않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11. 13.

타워팰리스보다 비싼 곳에 살지만, 행복하지 않다


2014. 9. 17 임경지 세입자네트워크팀장


본 기사는 오마이뉴스 기획 [집 나간 주거정책, 제자리 찾기] 기획 연재에 기고한 글입니다. 본 기획 연재는 . '세입자를 위한 정책'에 대한 기고입니다. 가계부채가 1000조 원에 이르지만 정부는 그저 부동산 활성화에만 혈안이 된 모습입니다. "빚 내서 집 사라"는 정부의 대표 정책인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를 완화시킨 데 이어 2주택자 전세 소득 과세를 철회하고 재건축완화 정책도 연이어 나오고 있습니다


내 어릴 적 꿈은 '아파트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식당 한켠을 개조해 다섯 식구가 부비며 살았던 유년 시절, 우리 집 옆에 올라가는 고층 아파트를 보면서 꼭 저기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더 이상 부모님이 집 때문에 눈물 흘리지 않게, 부끄러워하지 않게 집을 꼭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부모님은 1958년에 태어난 전형적인 베이비부머 세대다. 착실히 일해 결혼 20년 만에 드디어 내 집 장만의 꿈을 이뤘지만 외환위기의 아픔을 피해갈 수는 없어 다시 세입자로 살아가고 있다. 한때는 나도 부모님처럼 취직하고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하면 집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느덧 우리 부모님이 결혼했을 때의 나이만큼 자란 나는 이제 그 생각이 '환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로또를 맞지 않는 이상, 할아버지에게 숨겨놓은 땅이 있지 않은 이상, 빚을 내지 않고서는 나는 평생 세입자로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평생 세입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미친 집 값



▲ 소득 5분위가 저축한 돈으로 서울에서 중간 수준의 주택을 사기 위해서는 75.8년이 걸린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2012, 국민은행, 주택가격동향조사, 2012를 재가공)



"이 미친 집 값"때문에 대한민국 평균 수준으로 벌어서 저축한 돈으로 서울에서 평균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걸리는 시간은 자그마치 75.8년이다. 전 국민의 소득 10분위 중 중간인 5분위의 국민이 저축한 돈으로 서울에 중간 수준의 주택을 구입하기까지 약 76년이 걸린다는 것이다(통계청, 가계동향조사, 2012 / 국민은행, 주택가격동향조사, 2012). 


이 통계대로라면 25세에 취직해 100살에야 집을 살 수 있다. 소득분위가 가장 높은 10분위마저도 11년을 일해야 서울 중간 수준의 주택을 구입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미처럼 일을 해서 '내 집 마련'으로 주거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이러니 미친 집값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밖에.


집을 살 수 없으니 세입자가 되어 전월세를 전전하며 살아간다. 문제는 매매가는 조금씩 떨어진다 할지라도 전셋값은 80주 넘게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는 데 있다. 월세 역시 오르는 추세란다. 목돈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 월세를 선택하는데, 월세는 매 월 일정액의 임대료를 내야 하니 부담이 절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청년들 대부분은 월세로 살고 있다.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세~24세 청년 중 74.8%가, 25세에서 29세 청년 중 47.8%가 월세로 살고 있다. 이전 세대들의 20대 시절에 비해 절대적으로 높은 수치다. 게다가 타워팰리스보다 고시원의 평당 임대료가 더 비싸다. 


민달팽이유니온과 대학생주거권네트워크는 서울시 11개구 69개 고시원 임대료와 네이버부동산 도곡동 타워팰리스 2차(2012년 10월 시세 기준) 임대료를 비교해보았다. 그 결과 고시원의 평당 임대료가 약 15만2천원으로 타워팰리스의 평당 임대료 11만8천원보다 많았다. 이른바 '방값역전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또 민달팽이유니온은 지난 8월 1일부터 10일간 온·오프라인(청년 가구가 밀집해 있는 서대문구, 관악구의 일대 거리)으로 '청년 1~2인 가구의 원룸 관리비 실태조사(만 20세 이상부터 만 34세 이하까지의 연령을 대상으로 오프라인 98명, 온라인 301명, 전체 399명 조사)를 진행, 이 중에서 조사 연령대에 속하지 않는 4명, 원룸형 생활주택에 거주하지 않는 28명, 주소 불충분 및 서울 거주가 아닌 10명을 제외하고 유효설문 357명을 분석했다. 


실태조사 결과 원룸의 평당 관리비는 1만876원이었다. 아파트의 경우 2014년 6월 서울시 공동주택 통합정보마당 기준 평당 관리비는 5613원이었다. 비싼 만큼 집이 좋은 것도 아니다. 사실 집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곳에 대다수의 청년들이 살고 있다. 청년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나타내는 통계가 주거빈곤율이다. 주거빈곤은 최저주거기준(14제곱미터 이상) 미달이거나 반지하, 옥탑 또는 주택 이외의 거처를 의미한다.



▲ 소득 5분위가 저축한 돈으로 서울에서 중간 수준의 주택을 사기 위해서는 75.8년이 걸린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2012, 국민은행, 주택가격동향조사, 2012를 재가공)



서울 청년 1인 가구의 주거빈곤율은 36.3%에 달한다. 전 지역, 전 세대에 걸쳐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대학가 주변 겉은 번지르르한 주택들의 내부를 살펴보면, 최저주거기준 미달이거나 불법건축물이 태반이다. 아주 얇은 벽을 하나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으며 책상과 침대를 놓으면 밥상 하나 놓기가 어려울 정도로 작은 방들이 줄지어 있는 것이다. 청년들이 집이 아닌 '방'에서 산다고 하는 이유다.


청년 주거문제가 이처럼 심각한 상황인데도 정부의 노력은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2012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주택 재고량 중 공공임대주택은 단 5%, 그 중에서도 서울에 거주하는 청년 중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는 비율은 1.2%에 그친다. 공공임대주택의 공급량도 적을 뿐만 아니라 청년층을 고려한 입주 기준이 아니기에 발생한 결과다. 1~2인 가구가 지원할 수 있는 주택이 적고 입주 기준 역시 가구원 수, 서울 거주 기간(SH공사에서 공급하는 임대주택의 경우)에 따라서 가산점이 발생하니 교육과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올라온 청년 1인 가구가 입주하기란 하늘에 별따기다.



▲ 민달팽이유니온,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대학생주거궈네트워크는 지난 3월 민자기숙사 관련 정보공개청구 공익소송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대학 역시 마찬가지다. 대학교육연구소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12년 수도권 내 대학 기숙사의 학생 수용률은 13.5%다. 반면 서울에 있는 주요 대학 33개 기숙사의 학생 수용률은 단 9.6%에 그친다. 심지어 서경대, 동덕여대, 경기대, 추계에술대학교는 기숙사가 아예 없다. 한국사회에서 사립대학은 고등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으로서 그 공공성이 인정되어 각종 지원 및 세제 혜택을 받고 있음에도 학생들의 교육권과 주거권 확보를 위한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교육기관으로서의 당연한 책무를 방기할 수 있는 것은 '의무 기숙사 수용률'이 없기 때문이다. 1996년 이전에는 의무 기숙사 수용률 15%라는 규정이 있어 이를 충족하지 않으면 대학을 설립할 수 없었다. 그러나 대학자율화 조치라 불리는 '대학설립·운영규정'에서는 이 부분이 삭제되었다.


대학생 기숙사의 필요성이 강조되자 대학 역시 조금씩 기숙사 수용률을 늘리고 있다. 그러나 대학이 직접 짓는 직영 방식이 아닌 기업이 짓는 민자 기숙사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2005년부터 지어진 민자기숙사의 기숙사비는 2013년 기준(월), 1인실 최대 62만 원(연세대), 2인실 최대 42만 원(단국대)이고, 평균 약 32만 원이다. 


지역 기숙사의 월 기숙사비 11만 원~18만 원에 비해 2배에서 많게는 4배 가까이 비싼 상황이다. 이에 민달팽이유니온은 2013년 6월,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건국대를 비롯한 14개 대학에게 민자기숙사 비용의 책정 근거와 손익 현황에 대한 정보를 요구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이유는 "경영상의 비밀"이었다.


그렇다면 법은 어떨까? 현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세입자의 거주권보다 임대인의 소유권을 더욱 보장하고 있는 형국이다. 대표적인 한 예로 세입자에게 계약갱신청구권(최초 계약 만료 후 세입자가 종전 계약 조건대로 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 없다. 또한 입주자대표회의는 의무화되어 있지만 세입자 모임 및 회의와 관련한 규정은 없으며 세입자 협회 등 당사자 조직을 지원하는 제도 또한 전무하다. 이렇다보니 메뚜기처럼 2년마다 더 저렴한 집을 찾아 이사하거나 집주인이 원하는 대로 가격을 올리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청년 주거문제 해결은 미래의 청년세대를 위한 일



▲ 민달팽이유니온,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대학생주거궈네트워크는 지난 3월 민자기숙사 관련 정보공개청구 공익소송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청년 주거문제는 일시적인 시기에 겪는 문제가 아니다.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로 노동소득이 오르지 않는 현재, 지금의 주거불안정은 청년기를 넘어 전 시기에 걸쳐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주거불안정을 겪고 있는 장년의 자녀세대인 청년의 경우 주거불안정의 위험에 더욱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경향성을 나타내는 것이 위의 표다.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주택 점유 형태의 비율의 변화를 나타낸다. 


나이가 들수록 월세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주거불안정을 겪고 있다는 것인데 이들의 자녀인 청년세대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청년 주거문제 해결은 현존하는 주거빈곤, 주거불안정을 해소하는 것과 동시에 안정적인 장년, 노년 시기를 보내는 중요한 시발점이 된다. 그리고 미래의 청년 세대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세입자여도 괜찮은 사회에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