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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후기] 기숙사를 바로 세울 수 있는 힘

by 민달팽이유니온 공식계정 2017. 9. 6.

기숙사를 바로 세울 수 있는 힘


민달팽이유니온 임경지


“대학생 기숙사가 필요하다.” 라는 말에 대해 그 누구도 쉽사리 부정하지 않는다. 서울 청년 주거빈곤율은 40%에 달한다. 반면, 이 중 다수를 차지하는 대학생들이 입주할 수 있는 서울 지역 대학교 기숙사 수용률은 12.5%(대학알리미, 2017)에 불과하며 기숙사에 입주하지 못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취, 하숙 등 공식적으로 등록되지 않은 민간임대주택에 거주한다. 소형 주택의 경우, 중, 대형 주택보다 단위면적당 임대료가 비싸 주거비 부담이 높다. 타워팰리스보다 비싼 원룸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청년 주거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되기 시작하고 나서, 대선, 총선, 지방선거에서 기숙사, 공공임대주택 확충은 목표 수치만 후보마다 차이가 있을 뿐, 여야를 막론하고 모든 후보들의 공약에 포함되어 있다. 지난 대선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은 청년층을 대상으로 공공임대주택과 기숙사 등 30만호를 약속했다. 주요 대선 후보 중 가장 보수적인 홍준표 후보는 대학생, 청년, 신혼부부에게 무려 100만호를 공급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그러나 “우리동네 대학생 기숙사가 필요하다.”라는 말에는 누구도 선뜻 쉽게 나서지 않는다. 공약을 발표하고, 당선된 의원들은 좀처럼 기숙사와 공공임대주택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하지 않는다. 최근 들어 기숙사 건립에 대한 지역사회의 갈등이 심상치가 않다. 2013년 행복주택과 구의동 공공기숙사는 끝내 무산되었고, 2014년 경희대 기숙사는 여러 차례의 내홍 끝에 2017년 가을부터 입사가 시작되었다. 한양대, 고려대는 기숙사 신축 계획이 발표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 하고 있다.


지역사회의 갈등 양상 역시 다양해지고 있다. 대학생, 청년을 대상으로 건립되고 있는 공공임대주택과 기숙사에 대해 일부 주민들은 크게 “젊은 친구들이 술을 먹고, 이성교제가 활발해 교육 환경이 나빠진다.”라거나, “가난한 사람들이 들어와서 동네 분위기가 안 좋아진다.”와 같이 ‘가난한 시민’은 위험하고, 미성숙하고, 무절제하다는 편견을 내세워 반대한다. 또는 주변 임대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은 원룸의 공실률을 우려해 기숙사의 축소 또는 계획 취소를 요구한다. 이와는 다르게, 주변 지역의 자연환경, 조망 등 공유자원에 대한 이용의 축소를 우려하며 기숙사 건립 반대를 촉구한다.


숨통을 터준 지역사회


고려대의 경우, 개운산 근린공원 부지에 기숙사가 건립될 계획이 발표되면서 지역 일부 주민들의 반대가 시작되었다. 공원을 이용하는 주민은 '자연 환경 파괴'를 우려하며 기숙사 건립을 반대했고 이 뜻을 이어받은 성북구의회에서는 반대 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 주거공간이 필요한 학생들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학생들을 대변하는 곳 역시 당연히 없었다. 언론은 이를 ‘환경권’과 ‘주거권’의 대립으로 서술, 마치 두 권리가 양립할 수 없는 문제로 치환하며 보도하고 있다. 누군가의 편을 들기만을 원하는, 자극적이고 원색적인 말들의 대립은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채 심화시키고만 있다.


비슷한 갈등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지만 해결의 움직임은 없었다. 기숙사 건립의 주체가 되는 대학은 한 발 물러났고,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 구청과 구의회는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동대문구청은 기숙사 건립 신청과 사용 승인을 반려했다. 


이러한 답답한 교착 상태에 놓인 기숙사 문제에 숨통을 터준 것은 지역 사회다. 성북마을살이연구회는 기숙사 건립 갈등을 놓고 한 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대안을 만들기 위한 공론장 형성에 첫 발을 뗐다. 각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동등하게 마주앉아 보자는 것이다. 그 첫 자리로 지난 4일, 성북마을미디어지원센터에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모인 공개 토론의 장이 열렸다. 마을 주민, 구의원, 고려대학교 학생, 환경단체와 민달팽이유니온이 각자의 입장을 고려하며 토론을 이어갔다. 팽팽했지만 평행선은 아니었다. 그동안 환경권과 주거권의 대립 속에서 양자택일의 문제로만 치환되던 문제를 다시 진단하며 대안을 모색할 수 있었다.


갈 길이 멀지만 첫 단추로 충분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녹색연합 정규석 정책실장은 “지역사회의 다양한 구성원이 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개운산은 공원을 이용하는 주민만의 것도 아니고, 기숙사 역시 고려대학교만의 것도 아니다. 우리가 공유자원을 민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경험을 갖춘다는 것은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만이 공유자원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참여할 수 있는 장을 열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가능케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토론회 말미에는 종암동 주민인 정미림 선생은 “나는 기숙사가 지어지면 좋겠다. 그래서 지역 곳곳에 빈 땅도 알아보고 주민들하고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막상 기숙사 자체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대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앞으로 학생들에게 믿을만한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대화가 시작되지 않을까”고 말하며 소회를 밝혔다. 낯섦과 다름, 그 어드매에 있던 주민과 학생이 만날 수 있도록 손을 내미는 장면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우리 지역 사회가 공동체 구성원으로 누구를 호명하고 초대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힘은 다양한 사람들의 이해 관계를 조정한다는 데에서 나온다. 틀린 결정을 내릴 가능성을 줄여주고, 설사 잘못된 결정이라고 하더라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힘을 토론의 과정에서 얻기 때문이다. 이제는 ‘불쌍하거나, 불온하거나’ 청년들에게 이 둘 중에 하나의 이미지만을 선택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서기 위한 공론의 장 형성을 다각도로 모색해야 한다. 작은 동네 모임에서부터 토론회, 혹은 공청회 등, 그 틀거리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이어야 한다. 어쩌면 우리가 바로 세울 것은 비단 기숙사만이 아니라 사회가 아닐는지 반문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