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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달팽이집 살이

[달팽이집3호] 달팽이뿔에서의 다툼과 아름다운 시절 (김세현 조합원님 기고)

by 비회원 2016. 10. 31.

달팽이 뿔에서의 다툼과 아름다운 시절

 

 

안녕

 

잘 살고 있습니까. 달팽이31102호 막내로 서식 중인 성북구 비둘기 김세현입니다.

 

급하게 기고 요청을 받고 점심시간에 작성하는 글이라서 두서없음을 양해바랍니다.

민쿱이 상시 입주자 풀을 구성하면서, 3호집 공실도 대부분 채워졌습니다(보고 있나요, SH?).

새 식구들과 달그락 덜그럭 사는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늘어놓고 싶지만, 아직 새로운 입주조합원들과 본격적으로 교류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109일로 예정된 반상회 이후, 다른 분께서 많이 나눠주시길 바랍니다. 각설하옵고,

 

여러분, jtbc에서 방영된 드라마 청춘시대를 보셨나요? 보셔야 합니다. 12부작이라 하루에 몰아서 정주행하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다큐영화를 제작 중이신 안창규 감독님, 그리고 안예은 조합원 두 분의 추천을 받아서 추석연휴에 몰아봤습니다. 그럼 보셨으리라 간주하겠습니다. 왜 안 보죠? 청춘시대는 달팽이집 살이에도 잔잔한 교훈과 영감을 불어넣습니다. 0720!




 

벨 에포크의 첫 번째 규칙: 남자 출입 금지!

 

청춘시대의 장르는 세일러문을 모티브로 삼은 심리치료 전대물입니다. 달의 요정 세일러문은 여성 주인공 전대물의 시초랍니다. 뾰로롱 요술을 좀 부리다가 위기에 처하면 백마 탄 남자가 나타나서 구해주는 이전까지의 성역할 도식을 깡그리 깨버립니다. 여성 전사들은 박 터지게 싸우며 자력구제를 행사합니다. 주인공이 첫 하우스 메이트를 만난 날, 하메는 핑크색 세일러복 차림입니다. 이후로 주인공이 슈퍼맨 티셔츠를 입기도 하며, 다른 에피소드에선 원더우먼 벌칙복장이 등장합니다. 다섯 명의 벨 에포크 셰어하우스 입주자는 영웅이고 전사입니다. 위기에 처한 정예은(한승연 분)을 구출하는 에피소드에서, 난폭운전으로 현장에 실어다주는 택시기사 또한 여성입니다. “땅에서 솟아났나, 원더우먼음악과 함께 악한을 무찌르기도 하지요. 답답하게 불행을 견디던 윤진명(한예리 분)이 어느 순간 각성하는데, 티셔츠에는 “Winning love by daylight, Never running from a real fight.”라는 문구가 새겨있습니다. 바로, 영어판 세일러문의 변신주문입니다. 남성인물들이 내미는 도움의 손길에는 쿨한 하이파이브로 응수합니다. 그들의 삶은 남성이 개입해야만 완성되는 반쪽짜리가 아닙니다. 지난번 3호집 이야기를 전해주신 박수영 님과는 최근 재밌는 작업을 함께했습니다. 서울시 여성정책과에서 마련한 여성안전에 관한 세대별 좌담회에 패널로 모신 일입니다. 수영님은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세상의 친절이란 작품을 준비하고 연기한 소회도 나눠주셨습니다. “남성이 묘사한 대상이 아닌 살아있는 인물을 처음으로 연기해보았다.”라는 대목이 킬링파트였습니다. 벨 에포크의 남자 출입 금지 규칙이 내포한 바와 통하는 지점입니다.



팟캐스트 링크http://www.podbbang.com/ch/12419



 










벨 에포크의 두 번째 규칙: 헌신, 인내, 낭비, 오지랖 금지!

 

청춘시대의 공간적 배경은 7027번 버스가 누비는 연세대학교 인근 셰어하우스입니다. 연세대학교는 학벌주의가 아니라, 인물들의 연대를 상징합니다. 이들은 남성중심적 사회구조에 대항하는 도원결의를 맺는 동시에, 갈등과 위로의 역동을 나누는 심리적 연대에 놓입니다. 벨 에포크 셰어하우스라는 공간은 그래서 집단상담실이기도 합니다. 심리학과 새내기인 유은재(박혜수 분)의 시점을 통해서 적당한 주석도 붙습니다. 다섯 명의 입주자는 저마다 불안을 지니고 있습니다. 서로 존경하고 미워하고 시샘하고 경멸하지요. 최근 와각지쟁(蝸角之爭)이란 사자성어에 눈길이 갔습니다. “달팽이 뿔에서의 다툼이란 뜻이랍니다. 전국시대 위나라 혜왕에게 장자가 고한 비유로, 이를 통해 불필요한 싸움을 거두었다고 전해집니다. 청춘시대가 달팽이 뿔들에게 전하는 교훈은 다릅니다. “참기도 해야겠지만, 꼭 해야 하는 말은 하라고.” 쓸데없이 고통스러운 헌신과 인내의 시간을 보낸 유은재에게 윤진명이 말합니다. 똥오줌도 참는 것이 미덕인 헬조선 문화에서 할 말을 적시에 하는 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말 안 해도 다 알 것 같지? 절대 모른다, .” 강이나도 거듭니다. 우리는 흔히 초코파이의 오류에 빠지는데, 그건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초능력적 근자감입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또 사소한 사안일수록 범하기 쉬운 오류입니다. 내 생각과 감정은 결국 이어폰 속 멜로디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언행을 함부로 긍정적으로 부정적으로 여과해서 짐작해선 안 되죠. 벨 에포크의 인물들은 마치 가정집 화장실 거울처럼 노골적으로 서로를 비춥니다. 태풍은 자정되지 않는 무게의 고인 물을 강제로 돌게 하는 순기능을 띱니다. 다만, 철저히 대비하지 않으면 인명과 재산까지 할퀴게 되지요. 말하되 상처를 최소화하는, 이 섬세한 균형감각을 키우는 건 참 어려운 지향입니다. 사람은 오직 사람을 통해서만 치유하고 성장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도 잘 못하지만, 달팽이집이 그런 거울이면 좋겠습니다.






 

벨 에포크의 기억: 세월호와 살아남은 자의 슬픔

 

여객선 난파 사건의 생존자인 강이나(류화영 분)의 불안은 브레히트가 노래한 살아남은 자의 슬픔입니다. 그의 방어기제는 열심히 살지 않는 것(일종의 주지화)입니다. 강이나는 희생자의 아버지인 오종규(최덕문 분)에게 생사가 뒤바뀌었다면 딸에게 무어라 말해주겠느냐고 묻습니다. 오종규는 담담하게 전합니다. “살라고. 죄책감 같은 거 갖지 말고. 살아남은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니까. 잘 살라고. 그렇게 살아가라고.” 청춘시대는 강이나와 오종규의 에피소드, 유은재의 노란리본 머리핀, 연명치료 중인 유은재의 남동생에게 날아든 징병검사통지서 등을 통해 세월호를 말합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 900일을 넘겨 1000일을 바라보게 되었고, 백남기 어르신과 유족분들은 수모를 겪고 있습니다. 청춘시대의 연대는 브라운관 속을 벗어나, 사회적 연대로 걸어갑니다. 달팽이집 사람들과 나누는 연대를 역시, 마을로 사회로 더 넓혀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안녕

 

벨 에포크(Belle Époque)는 전쟁도 없었고 문화가 융성했던 프랑스의 좋은 시절, 아름다운 시절이랍니다. 각종 죽음과 성범죄가 난무하는 드라마의 정서와 얼핏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우리의 꿈은 임대인이지 임차인이 아닙니다. 벨 에포크의 집주인 할머니는 참으로 태평합니다. 우아한 음악에 몸을 흔들고, 어여쁜 옥상에서 식물을 가꾸며 일상을 보냅니다. 그리고 요실금 팬티를 갈아입지요(안예은 조합원이 발견한 대목). 어찌됐든 방광이 튼튼한 청춘, 그 아름다운 시절을 응원합니다.

 

졸문을 마치며 인사를 전합니다. 잘 살고 있나요? 우리가 이렇게 뒤숭숭한 시절에 살아있는 것도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저 시지프와 같이 다시 반대쪽으로 바위를 밀며 살아나가자고. 한 지붕 아래 시지프도 있고 프로메테우스도 있음에 서로 위로받으며 살자고.


☞ [달팽이집4호] 소소한 행복이 있는 공간 (권효경 조합원님 기고)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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