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건데, 4년차 연희동 세입자인 나는 동네에 아는 밥집이 하나도 없다. 동네에 모르는 길도 참 많다. 동네에서 익숙한건 길에서 만나는 동네 개냥이들 정도. 어느 순간부터 '왜 나는 지금도 내가 사는 동네가 이렇게나 낯설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던 것 같다. 연희동엔 우리 집이 있지만, 연희동은 나의 생활지역이 아니었으니 낯설 수 밖에.


나의 생활지역은 거의 홍대였다. 사람들과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끼니를 떼우기 위해 홍대에 갔었다. 동네에 밥집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우리집에 주방설비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거의 일과처럼 눈을 뜨면 같이 사는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홍대에 갔었다. 그 당시 "밥 먹자"라는 친구의 아침인사는 "홍대에 가자"라는 말과 다르지 않은 인사였었다. 우리는 거의 일과처럼 아침에 일어나 홍대에 자주가는 카페를 들려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을 만나 같이 밥을 먹곤 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홍대가 우리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곳처럼 느껴지겠지만, 걸어서는 1시간이 걸린다. 홍대에서 친구들을 만나 막차를 놓친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갈때면 항상 가는 길에 원성을 듣는다. "뭐야 너 가깝다며 왜이렇게 멀어?" 그때 알았다. 나에게서 홍대는 몇정거장 되지 않아서 가깝다고 느껴지는 생활지역이었지만 대게의 사람들에게는 '몇 정거장 씩이나!'되는 가깝지 않은 거리였다는 것을. 그리고 사실 나에게도 가깝지 않은 거리였다.


매일같이 그렇게 버스를 타고 밖에 나가 커피한잔의 값과 공간값, 밥값을 지불하고 돌아오던 나는 생각해보면 생활자가 아니라 소비자 였던 것 같다. '홍대'라는 공간의 소비자. 그것도 엄청난 부동산 값이 모든 서비스의 가격에 거품처럼 껴있는 곳인데 말이다. 당연한 결말이지만 나는 그런 생활을 지속할 수는 없었다. 왜냐면 그렇게 소비할 수 있는 돈이 나에겐 없기도 했거니와, 올해 2월부터 혁신활동가로 민달팽이유니온에서 일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활동가의 삶은 항상 피로한거시다!)


연희동 세입자는 맞지만 생활자는 아니었던 나


홍대를 거의 매일의 생활공간처럼 누비고 돌아와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한지 3년째. 그 사이에 연희동은 참 많이 변했다. 사러가 쇼핑몰 주변에 몇 없던 가게들은 이제 그 뒷길까지 채울 정도로 늘어났고, 갤러리와 카페들을 중심으로 대기업 프렌차이즈 상가들과는 다른 재미있는 공간들이 생겨났다. (물론 상권이 점점 커져가고 있으니 앞으로 '분더바' 같이 탐욕스러운 건물주에 의해 장사하던 세입자가 쫓겨나는 일과 대기업 자본에 의해 기존 상권이 망하는 일들이 더 일어날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렇지 않다.)


다른 상권과는 다르게 연희동엔 주차공간이 준비되어있는 가게들이 많다. 한껏 인테리어를 신경쓴, 럭셔리한 가게들을 보니 대체로 이 동네의 으리으리한 집들과 그 집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소비하며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진 공간들이구나 싶다. 그도 그럴것이 연희 동의 표상은 집집마다 세콤이 달려있는, 으리으리한 저택들이 모여있는 이미지이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내가 아는 연희동은 조금 다르다. 홍제천을 따라 사천교, 홍연교 근방의 낡고 오래된 집들. 신촌보다는 저렴한 월세를 낼 수 수 있기 때문에 분명 꽤 많은 청년 세입자들이 살고있다. 연희동엔 전두환도 기업가도 외교관 아닌, 으리으리한 저택에 살지 않으며 낡은 집에서 저렴한 월세를 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없는 존재처럼 여겨지는 것이 조금 화가 난다. '나와 같이 분노하고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텐데' 


그래서 고민했다. '연희라운지'로 불리는 우리집에 사는 나의 동거인 성수와 멍구, 그리고 역시 마찬가지로 연희동 세입자이지만 동네 생활자는 아닌 혜원과 함께. 무엇이 목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동네에서 우리와 같은 청년 세입자들을 찾아 함께 생활모임을 꾸리자고 이야기 했다. '동네에서 먹고 생활할 수 있게 네트워크를 만들자. 그러다보면 우리가 비빌 수 있는 자리도, 공간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재수없는 연희동에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자'고. 이게 요새 유행하는 마을만들기인지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건 매일 같이 롯데리아 홈서비스를 시켜먹는 혜원과, 4년차 생활자이지만 동네에 SF도서관같이 환상적인 문화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 안 다영이 결코 다른 문제를 겪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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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문학창작촌 야외공연장 

연희문학창작촌 문학미디어랩 

홍제천 노상 의자와 정자

SF&판타지 도서관 



청년 세입자의 삶을 들여다 보다


아파트가 익숙하거니와, 학교에서 밤 10시까지 야자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는 생활을 길게 했던 나와같은 청년들은 공간과 지역과 관계를 맺는 법을 잘 모를 것이다. 게다가 단절된 개인으로 살아온 경험들로 네트워크가 익숙하지 않다. 또 가사의 역할들이 명확하게 나누어진 가족공동체안에서의 자식역할을 수행하는 것과는 달리 혼자서 생활을 꾸려가야하는 자취의 길은 나에게 만만치 않았다. 엄마의 몫이었던 일들을 어떠한 연습도 없이, 독립한 이래로 다 떠맡게 된 나는 자취 4년차 이지만 아직도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취'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빈약한 살림의 뉘앙스를 벗어나 제대로 생활을 꾸려가는 '생활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단순하게는 이것 저것 살림능력을 함께 가르치고 배우며 관계를 만들어 외로움도 덜고 싶고, 운동하며 건강을 챙기기도 하고 싶다. 아무튼 잘 살기 위한 고민을 계속 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또 연희동의 특성상 동네가 가지고 있는 문화기반들을 있지 않은가, 그런 문화 기반들을 찾아 누리며 삶을 풍족하게 하고 싶다. 단절된 개인으로 살아가기엔 벅찬 삶을 조금 씩 덜어 나눌 수 있는 나와 같은 청년세입자들,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보면 별 답이 없다. 일단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 우리를 찾아오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서로를 이해하며 친해지는 것. 당장은 반찬을 비롯한 생활재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그 외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생각해보았는데, 관광객들을 위한 관광안내서가 있듯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마을안내서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퍼뜩 나 구상을 하고 있다. 생협매장, 장터, 카페공간, 재활용센터, 도서관, 무료이용가능 세미나룸 등을 엮은 종합안내서 같은 건데 정기 마을탐사를 다니며 그런 공간들을 찾아내 재구성할 예정이다.


아무튼, 나눌 수 있는 어떤 것이라도 나눠보는 것이 목표! 사실 이 글은 연희동 청년 세입자 모임의 참가자들을 모집하는 홍보의 여지가 조금, 아니 꽤 크게 있는 글이 될 수도 있다. 나와 혜원과 별반 다르지 않은 문제를 안고 살아가며 '이게 사는건가!' 싶은 연희동의 청년 세입자, 두팔 벌려 환영한다. 사실 우리의 기획이 구려서 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으니(...) 우리를 구원해줄 그대의 창의력또한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그대와 나눌 수 있는 어떤 것이라도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니까. 아무튼, 이래저래 연희동 청년 세입자 모임은 시작되었다.


   




이 글을 써주신 다영님은 연희동 세입자 모임 '연희너머'의 준비멤버(?)이며, 연희동에 사는 민달팽이 유니온 조합원분들께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희너머는 정기 마을탐사, 반찬만들기, 영화소모임을 비롯한 동네에 있는 기반을 이용한 기획들을 하고 있습니다만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멤버들이 창의력부족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함께하실 분들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_<


+) 민달팽이 유니온은 연희동 세입자 모임을 비롯하여, 연세대, 대흥동 세입자 모임과 연남동 갈현동 희망하우징 모임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연희동을 비롯한 세입자 모임을 함께 하실 분들은 언제든 민달팽이 유니온으로 연락을 주시면 됩니다 :)


Posted by 민달팽이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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