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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달팽이유니온]/* 활동보고

[특별기고] 연희로 25길 12, 분더바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4. 28.


펜스가 쳐지기 전 연희로 25길 12 @분더바

펜스를 덮고 있는 사람들의 피켓과 현수막 @분더바

                

연희동 라운지. 3년전쯤 연희동에 이사 오면서 생겨버린 우리 집의 이름이었는데, 정말 이름 처럼 많은 사람들이 너무 쉽게 애용하는 라운지가 되었다. 친구들에게 라운지로써의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던 2014년 3월의 어느날, 집 앞 5분거리에 철거 농성장이 생겨버렸다. 처음 갔을때는 예쁜 가정집에 마당이 있었던 카페건물 앞 텐트 였는데 이제는 부지에 펜스가 쳐져서 텐트는 정말 인도, 길 위의 텐트가 되었다. 그리고 연희라운지는 3년만에 분더바에서 스스로의 쓸모를 찾아 분더바 연대모임의 실체있는 조직(?)이 되어버렸다.


흔하디 흔한 영어의 이름이 아닌, 독일어로 '분더'(wunder)라고 발음되는 놀랍도록 신기한 카페 분더바. 그 곳은 은퇴후 안정적인 노후를 꿈꾸는 두 부부가 차린 카페였다. 마당이 있는 2층집 연희동의 가정집에 부부는 1층을 카페로, 2층을 주거공간으로 쓰며 장사를 시작했지만 장사를 시작한지 몇 개월 되지 않아 그들은 쫒겨나게 되었다. 카페 주인부부는 아픈 몸의 병원비를 대느라 두달치의 월세를 밀렸다. 급하게 돈을 빌려 그들은 밀린 월세를 낼 돈을 마련했고 집주인에게 지불하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지불 할 새도 없이 건물주는 이때다 싶은지 명도소송을 걸었고 분더바는 건물주 아들의 카페가 될 위기에 처했다. 그 사이 집주인은 카페를 인수할 새로운 세입자를 찾아 권리금을 받게 해주겠다는 말로 부부의 뒷통수를 치는 악랄함을 보이기도 했었다. 월세를 조금 늦게 냈다는 이유로 두 부부는 법의 사각지대에서 합법적으로 공간을 잃고 속옷도, 딸의 졸업앨범도 챙기지 못한채 쫒겨나 텐트를 치게 되었다.

 

조용한 동네에서 소란들이 벌어지니 동네에서 주시는 관심도 조금 특별하다. 그 중에서는 종종 몇번의 행사에 함께 뒤에서 지켜봐주시는 익숙한 얼굴의 동네의 주민들도 계시는데, 그런 분들의 방문은 사장님 부부에게 엄청난 힘이 되고있다. 그 분들의 손에 달린 무거운 봉지가 아닌, 머쓱함을 무릎쓰고도 농성장을 찾아 '당신을 지지합니다'라고 드러내주는 연대의 마음. 그분들을 맞이하는 사장님 부부의 표정을 보아 '그것이 투쟁의 큰 힘이 되었구나' 확신한다.


화요일 기독인연합회 예배 @분더바 농성장

<세이브 더 분더바>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공연 @건물주 집 앞


분더바 농성장 본격 <홍 to the 보>


분더바에서는 거의 매일같이 작고 큰 이벤트들이 일어난다. 월요일은 '분더바연대모임'의 정기 회의 날이다. 연희라운지에 사는 나의 동거인들도 참여하는데, 단체이던 개인이던 상관없이 분더바에 연대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서 농성장에서 벌어지는 한 주의 이벤트들을 기획하고 준비한다. 또, 언제부턴가 민유는 집행부회의를 분더바 농성장에서 진행하며 연대를 하기로 결정했고 민유도 매주 월요일마다 민유는 분더바를 찾아 집행부 회의를 진행하고있다. (농성장에서 공간을 쓰는 연대는 꽤 엄청난 연대이다!)


화요일 저녁엔 기독인연합예배를 진행한다. 저저번주 화요일은 분더바의 투쟁이래 가장 많은 참가인원(무려 200명...)이 참여했다. 그리고 매주 수요일 저녁에는 거리강연을 진행한다. 목요일에는 자립음악생산조합과 함께 목요음악회를 진행한다. 몇몇의 뮤지션들은 분더바에 연대하기 위해 먼저 달려와 주기도 하셨는데, 빈약한 장비에도 훌륭한 공연을 만들어낸다. 매 공연마다 만들어지는 묘한 공기들이 투쟁의 주체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에게 닿는 순간들이 느껴지는데(!) 설명하기 어렵지만 목요음악회는 매번 같은 마음으로 같은 공기 속에서 같은 음악을 듣는 낯선 타인이 한 순간에 둘도 없는 동지가 되는 기묘한 경험을 준다.


금요일엔 정해진 행사가 있지는 않지만, 그때 그때 기자회견이나 규탄집회 등 필요한 행동을 한다. 그리고 매주 토요일은 <세이브 더 분더바> 집중행동의 날이다. 저번주 토요일은 서대문구 앞에서 '너희가 천막을 찢지 않았더라면'이라는 타이틀호로 다함께 라면을 먹으며 "라면" 구호를 외치는 이상한 집회를 가졌다. 라면을 다 먹은 후 참가자들은 서대문 구청부터 분더바의 건물주 조중열이 사는 연희동 임광아파트까지 분더바 사장님이 부르는 타령리듬에 맞추어 구호를 외치며 행진을 하였다. 일요일은 별꼴의 투쟁카페와 함께 벼룩시장을 진행한다. 맛있으면서 무지 싼 먹거리들의 수익금은 분더바의 투쟁기금이 되는데, 먹는 연대에 자신 있는 분들은 언제든 오시라. 별꼴 외에도 해방촌 빈가게의 베이커리연대, 노동당의 갈비연대, 곱창포차의 곱창연대, 노들장애인야학의 칵테일연대 등 곳곳에서 다양한 먹거리 연대를 해주셨다. 


윤영배의 공연을 바라보는 관객들 (눈빛이 다들 하트하트...)

강아솔의 공연 중 바람이 거세자 스스로 바람막이가 된 관객들


최성희 사장님이 가르쳐주신 연대의 의미 


연대의 이유야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이, 분더바의 사정은 정말로 너무나 참혹하고 가슴아팠다. 인간이라면 공감할 수있는 절대 '선'과 '악'이 명확했으니 분더바가 기자회견을 하고 농성을 시작하는 첫 날, 나는 당연하게 퇴근길에 그 곳을 찾았다. 그러나 농성이 한달을 넘어가며 이 투쟁에 내가 연대하고 있는 이유는 첫 날의 이유와는 조금 달라졌다.


저번주 일요일 농성장에서는 비가오는터라 벼룩시장 대신 보이는 라디오를 진행했는데, 최성희 사장님이 게스트로 올라와 사연을 들려셨다. 사연은 사장님 자신의 투쟁초기 겪었던 어려움에 대한 고백이었다. 사장님은 투쟁 초기 쫒겨난 세입자인 자신의 처지가 챙피해서 혹시라도 아는 사람이 지나갈까 농성장을 지킬때며 일인시위를 할때며 항상 조마조마하셨단다. 그때는 심신이 다 지쳐 투쟁할 방법도 모르고 투쟁을 무서워했는데, 아무 연고도 없이 한걸음에 달려오는 연대동지들이 너무나 의아해서 외계인처럼 느껴지셨단다.(외계인이라는 말에 다같이 '빵' 터졌다.) 뒤이어 그런 자기를 재촉하기 보다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기다려준 연대동지들이 지금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하셨다. 평범한 소시민에서 하루아침에 투사가 되어야 했던 자신처럼, 길바닥에 앉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보게되면 자기도 연대동지들처럼 그들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어린아이가 걸음마 배우듯 옆에서 손을 내밀어 주고 싶다고 하셨다. 생각도 못했던 그녀의 깜짝 고백에 다들 마음이 뭉클해졌는지 몇몇은 촉촉해진 눈가를 다독였다. 무엇보다 투쟁 주체와 함께 속도를 맞추어기 위해 고민 했던 지난 한달의 농성. 오늘 사장님의 고백은 지난 투쟁으로 다져진 관계들을 확인할 수 있는 고백이었다. 모두가 뭉클해진 분위기에 재치있는 진행자는 "외계인들을 많이 만들어 지구를 정복하자"며 사장님께 응수(?)했다. 다들 또 빵 터졌다.


바쁜 일정과 피로한 몸에 농성장에서 어떠한 실무분담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전혀 없지만 그럼에도 퇴근길과 주말에 농성장을 자주 가게 되었던건, 투쟁 주체에게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연대는 농성장에서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들을 털어내며 같은 시간과 추억을 쌓는 것 뿐이지만, 그래도 그것이 그들의 싸움이 외롭지 않게 하는 힘이 되길 바랬다. 그러나 그 곳에서 함께 부비며 내가 생각하는 연대는 내가 할 수 있는 연대가 아니라, 되려 분더바가 나에게 할 수 있었던 연대였음을 깨달았다. 사장님의 고백에 마음이 뭉클해졌던 순간, 연대라는건 일방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평등한 개인이 개인에게 할 수 있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고 반성하게 되었다. 그날 깨우친 연대의 의미는 오래도록 기억 될 것이다.


분더바의 연대는 어렵지 않다. 그저 공간에 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는 것을 먹으면 된다. 분더바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처럼 생각해주시는 많은 상인분들의 연대로 감사하게도 농성장에는 먹을 것이 꽤 많다. 그러니 꼭 무겁게 검은 봉지를 손에 들고 오지 않아도 된다. 왠지 철거 농성장이라면 그분들에게 어떠한 '도움'이 되어야 할 것 같고, 빈손으로 가서는 안될 것 같은(?) 마음에 항상 무언가를 사와 방문하게 되지만, 농성장에서 지켜본 바로는 사장님부부에게 가장 힘이 되는건 정말 가벼운 '발걸음'이다. 가벼워서 자주올 수 있는 발걸음. 그 걸음으로 쉽게 쉽게 농성장에 많은 사람들이 왔으면 좋겠다. 머쓱함을 무릎쓰고 농성장을 찾는 외계인들의 연대의 마음. 그것이 분더바에 가장 필요하다. 분더바 연대모임은 누구나 쉽게 올 수 있는 농성장이 되기위해 요일 별로 머쓱하지 않을 빌미를 생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더바로 향하는 당신의 발걸음이 무겁다면, 자 발을 들어라. 업어서 데려가 주겠다. (농담입니다...) 


다음주는 저랑 함께 분더바에 가시지 않으실래요?


   


 

이 글을 써주신 다영님은 민달팽이 유니온의 상근자이며, 분더바 농성장 5분거리에 살고 있는 연희동 세입자 입니다. 


분더바에 혼자가기 외로워 함께가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는 민달팽이들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분더바에 가고 싶지만 머쓱한 민달팽이들은 010-8465-991육 으로 연락을 주시면 다영님이 친히 연대의 발걸음이 갑자기 쉬워지는 마법을 보여주신다고 하시는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