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천이 흐르는, 남가좌동 달팽이집 입주기

"마약 같은 우리 달팽이집으로 드루와 드루와"


글, 사진 : 김해랑님

14년 8월 8일, 진중했던 입주기

사실 예민해 낯선 곳에서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그런데 달팽이집에서 꿈만 같이, 단잠을 잤다. 그것도 앞으로 2인실 같은 방을 쓰게 될 금시루와 함께! 예비 룸메는 푹 잔 나머지 지각을 할 뻔했으나, 이곳 교통편을 잘 알고 있는 작은 방 소라님 덕에 곧잘 출근을 했다. 먼저 일어나는 벌레는 잡아먹힌다는 듯이 우리 집 달팽이들은 넉넉하게 자고 일어나는 대로 차례차례, 신기하게도 큰 불편 없이 자연스레 화장실 사용 순서도 정리된 것 같다.

나는 조금 일찍 깬 김에 달팽이집에서 한 길 건너 있는 홍제천을 따라 거닐었다. 오랜만에 따스한 햇살을 온 몸으로 느끼는데, 정말 ‘행복해 죽겠다’는 표현이 맞았다. 홍제천의 오리들이 일으키는 잔잔한 파문이 내 안에도 평화롭게 전해지는 듯했다. 내가 진정 달팽이집에서 살아도 되는 건가, 아니 진짜 살게 되는 걸까. 서울에서 이렇게 쾌적하고 고즈넉한 주택가에 살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저녁에 본가로 돌아와서는 부모님과 작은 마찰이 있었다. 경제적인 문제로 집안 분위기가 좋지 않을 때면 그 불똥이 나에게 자주 튀었다. 그때마다 부모님 집에서 벗어나 독립하기를 열망했었다. 언제나 가능할까 싶던 그 바람을 이루다니... 사실 그동안 보증금이라는 큰돈을 부모님 도움 없이 마련하기도 힘들거니와, 어디서 이만한 환경에서 살 수 있을까 싶어 선뜻 용기를 못낸 채 천안아산에서 서울까지 죽자 살자 통학을 했었다. 

나의 룸메도 지금껏 노량진 고시원에서 살았고, 자취를 했을 때는 같이 살던 친구가 너무 깔끔한 데다 어려움을 얘기할 수 없어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같은 방을 쓰는 일도 걱정이 많았다는데, 천만다행이다. 룸메가 나와 생활습관이나 성향이 비슷하다. 그야말로 면접 심사위원님들의 굿매칭 사례(둘 다 청소와 정리를 잘 못... 안한다. 중요한 지점. 하하). 룸메가 그동안 살아온 삶의 궤적을 알게 되니 더욱 애정이 가고 애틋하다. 

14년 8월 14일, 흥분했던 입주기

눈물이 차올라서 고갤 들어 꺼이꺼이 목 놓아 울어버렸다. 이 감사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다. 그저 힘닿는 데까지 함께하며 이 은혜를 민유와 청년들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사실 이런 기회를 만들어준 민유에게 내 영혼을 바치고 싶지만, 민유 상근자분들이 내 영혼까지는 사양하실 듯(헤헤). 이러다가 입주자들끼리 막 싸우는 건 아닌지(하하). 하지만 그런 갈등조차 아우르며 부대껴가고 싶다.

그간 3차에 걸친 입주워크숍에서, 주택협동조합에 대해 이해하고 공동주거의 어려움과 이점을 함께 꼽아보았다. 각자 쓴 입주계획서를 토대로 이런 저런 질문을 나눈 개별 면접까지- 그 시간들이 몸에 스미어 앞으로 꾸려갈 공동체생활의 길라잡이가 되어준 듯하다. 조합을 통해 처음 만난 사람들이, 몇 번 마주하며 벌써 반 발짝 가까워진 사이가 되었다. 서늘하게 각자의 영역을 가지면서도, 공용 공간에서는 온기를 나누는 사이로.

오늘도 하우스메이트 소라님과 함께 맛나게 점심을 먹었다. 어제는 집들이 선물로 옆집 쏘울님께 향초를 받았다. 깔끔하게 정리해 이사를 마친 쏘울&쑴네 거실에서, 즉석 집들이 맥주파티! 앞으로 두 분이 더 입주하시면 상근자분들도 다 초대해 거나한(?) 맥주파티가 있을 예정이다. 밥 한 끼, 소소한 선물, 곁을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 대단히 행복하고 고무적인 일이다.


혼자만의 방에 익숙하던 나에게도 이제 새 삶이 펼쳐지고 있는 것 같다. 단순한 셰어하우스와 하우스/룸메이트를 뛰어넘는, 삶의 동반자가 될 수 있기를! 환상은 금물이라지만, 역시 설레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계약서를 쓰는 날, 우리 입주자들은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권지웅 대표님에게 편지를 하나씩 받았다. 1호 달팽이집 입주자들을 생각하며 꾹꾹 눌러쓴 애정 어린 손편지가, 우리 주거공동체의 시작을 두근두근 알렸다.

10-11월에는 지금 짓고 있는 옆 건물이 완공되어 14명의 이웃이 더 생긴다고 한다. 1층에 어울려 놀 수 있는 공간도 만들고. 이미 동네에 함께 술 기울이기 좋은 운치 있는 포장마차 아지트도 있고, 주변 맛집과 걷기 좋은 골목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 집주변에 ‘노매드’라는 장소도 있어, 함께 기타를 배우거나 공연을 도모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입주자들끼리 모여 미싱기로 커튼도 만들고, 생일을 챙기고 아픈 걸 알아주는 동무가 된다면 더욱 좋겠다.

달팽이집 입주자들이 점점 늘어나면, 이야 그러면 진짜 재미난 인생 되겠다. 서로 바쁜 와중에도 숨 쉴 틈이 생기는, 더불어 잘 사는 삶. 홍제천이 흐르는 남가좌동 ‘달팽이집’으로 놀러오세요! 우리 산책도 하고, 배드민턴 치고, 자전거도 타요!

14년 9월 3일, 곁들이는 입주기

어딜 가나 ‘달팽이집’에 산다고 조잘댔더니, 누군가 내게 ‘달팽이집 홍보대사’인 줄 알았다고 하더라(풉). 덕분에 ‘달팽이집’을 포털에서 직접 찾아봤다는 사람들도 있고, ‘두더지집’으로 착각한 사람도 생겼으며, 달팽이집에 초대해 달라고 로비(?)하는 친구도 속출하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

하지만 살아보니 이런 우리 집에도 다소 치명적인 맹점이 있는데. 한 번 들어오면 마약처럼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것. 조명이 따스해서인지, 아늑함의 극치여라(자랑인가). 또, 공유재나 모델하우스마냥 불시에 집이 공개되는 일이 생기는데! (물론 민유 상근자이자 201호 입주자인 소라짱의 발 빠른 노고로 말끔하게 연출되곤 하나,) 모두의 평화를 위해 평소에도 정리와 인테리어에 바짝 신경을 써야겠다는 경각심이 일었다. 마치 이것은 나가서 언제 죽을지 모르니 항시 신변 정리를 해두는 것과 흡사하다. 나를 잠재우고 깨어있게 하는 달팽이집.

비를 조금 맞아 감기몸살이 올락 말락 하던 찰나, 단체카톡방에서 소식을 듣고 날 걱정하던 금시루가 따끈한 유자 음료를 사들고 왔다. 아아, 이것은 바로 나의 달팽이집 입주로망목록에 있던 ‘아플 때 서로 챙겨주기’가 아니던가! 내가 제일 먼저 아프면서 수혜자(?)가 되었다. 역시 이게 사는 맛이로구나. 가끔 일로 바빠 집사람들이 부재중인 날이면 공기부터 다르다. 괜히 그립다. 택배기사님이 ○○님과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 할 때마다 반추하게 된다. 우리 집사람 사이, 어떤 말로 형용해야할까? 괜찮아, 사랑이야. 그러니 어서와, 달팽이집은 구면이지? 따뜻한 보금자리, 우리 달팽이집으로 드루와 드루와.


이 글을 써주신 해랑님은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의 1호 공급주택인 남가좌동 달팽이집에 거주하시는 입주 조합원 이십니다. 




Posted by 민달팽이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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